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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조각글, 연성

[에스이안] 솔직함, 그 한 걸음

*그저 먼저 보고 싶어서 찾아가는 이안이가 보고 싶었어서.. 연하남의 귀여움이랄까요.

사랑을 알고서는 가끔 이렇게 감정이 흐르는 대로 행동하는 거도 좋습니다.



한가로운 어느 오후,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인 샬레이안은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식의 도시인만큼 도시 곳곳에서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는 사람들, 생각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도시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가에 있는 한 집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화로운 도시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가 열린 창문 사이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 주변을 지나다니는 주민들은 연주를 하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겠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가정은 실제로 맞는 것이기도 하였다.
 
"후..."
 
창가에서 연주를 하던 남자가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이내 천천히 바이올린 현을 멈추었다. 어느새 옅은 파도 소리만이 들리며 주변은 고요해졌다. 
오늘은 여기 까지라는 듯 남자는 손에 든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넣어 정리하고는 다시 열린 창가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그의 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휘날렸다.
한동안 멍하니 바깥을 보던 그는 무언가 결심을 하였는지 발걸음을 옮겼다.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인지 부랴부랴 움직이면서도 그의 동선은 막힘이 없었다.
어느새 편하면서도 깔끔한 옷차림을 한 그는 다시 집 안 거실에 서서 무언가를 손에 쥐고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이안, 이미 이렇게 준비한 마당에 다시 무르려고?'
 
자신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마지막 고민을 하던 이안은 잠시 머뭇거리던 손을 멈추고는 이내 눈을 감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생각했다.
 
'이미 마음은 거기로 향해 있으면서 더 고민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어.'
 
어느새 발 밑에 보랏빛이 생기더니 이안의 몸을 감쌌다. 텔레포라는 지역 이동 마법을 써서 그가 현재 원하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슉-
 
자신의 몸이 이동되었음을 느낌과 동시에 이안은 살짝 숨이 막히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눈을 뜨니 형형색색의 색채와 여러 문양의 타일로 이루어진 화려한 도시가 보이고 점점 습한 기운을 몸 전체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왔었던 라자한이었다.
 
'오랜만에 오니 이 습도가 익숙하지가 않네.'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으로  왔지만 이안은 점점 더위를 느끼고 있었다. 근 몇 개월 만에 오다 보니 금세 기후를 까먹을 정도가 된 자신에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끼면서도 현 상황을 어찌 타파할 것인지 이안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차피 보러 온 것이고 하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하는 게 나으려나.'
 
이안이 하루 내내 고민을 한 것은 사실 그의 연인인 에스티니앙 때문이었다. 10년 정도 친구이자 동료로 지냈다가 그가 별을 구하고 온 후 자신의 꿈을 위해 샬레이안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둘은 각자가 원하는 길을 갔었다.
스스로가 선택한 인생이고 그것이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둘은 어떠한 선택이든 존중한다는 무언의 공감을 한 후, 그들은 아주 오랜만에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물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가 옆에 있을 때 얼마나 편안함을 느꼈는지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너무나 알고 지낸 시간이 길었기에 그 자연스러움의 바탕에는 서로가 함께 하고 싶다는 무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그 밑바탕에 있던 마음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는 걸 둘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후 오랜만의 재회에서, 그들은 행동으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이후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다만 에스티니앙은 혼자만의 여행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안은 그가 추구하던 연구의 목표가 아직 남아있었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꿈의 고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들은 연인이지만 서로의 꿈을 우선적으로 존중해 주었다.
 
그러다가 이안은 유독 오늘따라 그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단순히 그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자신의 심리 상태가 그저 순간적인 충동인 것인지 아닌지 의문이 들어 스스로를 지켜보고자 하였다. 연인이 생각이 난다지만 자유로운 여행의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기 때문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심란해져서 이를 다스리고자 잠시 바이올린을 킨 것이었다.

언제나 생각할 게 많을 때  바이올린을 켜고 선율을 연주하면 이안은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이 하나 둘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히려 반대로 되려 더 커져만 갔기에 그는 결국 자신의 감정에 백기를 든 것이었다.
 
텔레포를 타기 전 잠시 주머니에 넣은 링크셸을 만지며 아예 에스티니앙에게 보러 가겠다는 말을 할까 하였지만, 차마 보고 싶어서 라는 말을 오랜만에 연락해서 하기에는 부끄러워 약간의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라자한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느낀 라자한의 날씨에 이안은 이 참에 그냥 그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미 몸도 마음도 다 나눈 사이이지만, 그것 또한 서로에 대한 배려로 말 대신 행동이 먼저 나온 것이었기에 이제는 서로를 더 잘 아는 만큼 억누르고 숨기던 감정을 표현하는 거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약간의... 이벤트.. 같은 걸까.'
 
어느새 라자한 내의 시장에 들어온 이안은 참 자신도 감정에 물러졌구나 하면서도 결국은 그에 순순히 따르기로 하였다. 이윽고 어느 한 가게에 멈춰서는 한 물건을 지긋하게 쳐다봤다.
 
"어서오ㅅ...아니 영웅님 아니신가요?"
"쉿... 남들 눈에 너무 띄고 싶진 않아서... 혹시 이 옷 파는 건가?"
"그럼요! 이거는 저희 라자한의 전통 복식의 문양이 들어간 옷이랍니다. 화려해 보이지만 다들 이런 옷을 입고 다니니까요."
 
평소 목 또는 팔꿈치 전후로가 최대 노출인 이안에게 그 옷은 약간 파격적인 의상이기도 하였다. 소매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민소매인 의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더운 라자한에서는 예외가 될 옷차림이었다. 무엇보다도 오늘은 그 옷을 입을 수 있을 듯하였기에, 이안은 주저하지 않고 원하는 색상의 옷으로 구매를 하였다.
 
가게 근처에 마련된 탈의실에서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은 이안은 자연스레 라자한의 색채와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머리색보다는 옅은 푸른색 상의는 주인을 만난 듯 그에게 자연스레 어울렸다. 가볍게 가게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는 데, 가게 아주머니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급히 이안을 불렀다.
 
"영웅님은 머리카락이 길어서 이거도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요?"
 
직원이 내민 것은 알록달록한 색깔 구슬과 금실 장식이 어우러진 긴 머리끈이었다. 평소였으면 너무 화려하다며 거절했을 이안이었지만, 지금의 의상에는 더할 나위 없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머리끈 값까지 함께 지불하였다. 
 
"이왕 라자한 옷을 입으신 만큼 머리카락도 묶어드릴게요. 잠시만요."
 
직원은 신이 난 듯 이안의 뒤로 자리를 잡아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어주기 시작하였다. 머리카락 결이 부드럽다는 말을 하며 그의 머리를 조금씩 어루만지며 천천히 모양을 잡아 묶어주었다. 다 되었다는 말에 직원이 건네준 거울을 본 이안은 잠시 자신의 모습을 보곤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 살짝 웃고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사실 이안은 직원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머리를 묶어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치장해서는 남편에게 자신의 모습이 어떻냐며 묻는 새색시가 된 기분에  스스로가 웃기면서도  그 마음이 지금은 이해가 가기에 이안은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잘그락- 툭-
 
자물쇠가 뭉툭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라자한 카마 구역에 위치한 한 일반 가정집 앞에 이안이 서 있었다. 사실 그 집은 그와 에스티니앙의 두 번째 집이기도 하였다. 사베네어 섬을 꽤 마음에 들어하는 연인을 위해 이안이 선뜻 큰돈을 써서 마련해 준 거처였다. 
 
오랜만에 들어온 집 안은 예상처럼 이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을 굳이 꼽자면 약간의 동방 식재료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운동을 한 것인지 수건이 걸린 공간이 있었던 것 정도였다. 먼지가 크게 쌓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는 이곳에서 머무는 것 같아 보여 이안은 그가 잘 사용해주고 있다는 것에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자잘한 물건들을 정리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마 해가 질 즈음에는 그가 이곳에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안은 낮에 고민하던 링크셸을 꺼내서는 연락을 시도하였다.
 
"여어, 무슨 일이야."
"나 지금 라자한에 와 있거든."
"최근에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는데. 글쎄...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오고 싶더라."
"집에 있는 거지?"
"어. 그러니까 빨리 와."
 
이안의 말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으나, 이안은 에스티니앙이 자신의 마지막 말을 듣고 분명 최대한 빨리 달려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항상 바쁘거나 피곤해서 이안 자신이 그의 앞에 먼저 행차하는 법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온 것이니 말이다.
 
그가 달려올 것에 이안은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자 하였다. 침대 옆에 있는 라자한 램프에 초를 붙이는 것이 다였지만, 그것만으로 이안은 약간의 두근거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쿵-
 
크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안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침대 근처 램프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어느덧 땅거미가 져서 실내는 조금 어두컴컴했다. 그런데도 에스티니앙은 바로 이안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가 술에 취했던 그날에도 유난히 빛나게 보였던 그 눈을 바라본 것처럼 그 어둠 속에서도 이안의 푸른 두 눈은 그에게 너무나 잘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빛이 있는 곳까지 다다른 에스티니앙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너..."
"... 놀랐어? 여기 오랜만에 오니 덥기도 하고... 겸사겸사 좋게.. 보이고 싶어서?"
"평소에 팔도 잘 노출하지 않던 현인님께서 무슨 바람이 부셨대?"
 
약간은 능글맞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에스티니앙의 눈빛에 이안은 그의 청회색 눈동자 멀리 위치한 그의 욕망을 본 것 같았다. 자신이 그를 보고 싶어 했던 것처럼, 그 또한 자신을 보고 싶어 했음을 느꼈다. 그에 기분이 좋아져서 이안은 자연스레 에스티니앙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 좋네. 정말로."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말없이 거리를 보다 좁혀갔다.
한 사람의 팔은 목에 다른 한 사람의 팔은 허리를 감쌌다. 이내 폭신한 침구에 누운 듯한 소리가 들리고 머지않아 작은 숨소리와 사랑을 나누는 소리만이 공기 중에 퍼질 뿐이었다. 
 
솔직함을 표현한 두 사람의 밤은 여름 밤하늘을 수놓는 흘러가는 은하수처럼 황홀하면서도 아름다웠다.